얼굴이 남은 그림은 아직 찾지 못했어요. 대신 이 화가의 다른 그림들

화가 · 18세기

카날레토

Canaletto · 1697–1768

오페라 무대 배경을 그리던 아버지 곁에서 붓을 잡았다가, 진짜 베네치아의 물길과 광장을 그려 영국 여행자들의 집으로 보낸 화가예요.

71살았던 해
18주로 그린 세기

생애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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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날레토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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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720로마

    1720년 사육제 무렵, 로마의 카프라니카 극장에 막이 올라요. 무대에는 알레산드로 스카를라티의 새 오페라 두 편이 차례로 올랐어요. 그 무대 배경을 그린 사람이 베네치아에서 온 무대 화가 베르나르도 카날과 스무 살 남짓한 아들 조반니 안토니오였어요.

    가짜 궁전과 가짜 거리를 그리던 이 젊은이는 베네치아로 돌아온 뒤, 무대 대신 진짜 도시를 그리기 시작했어요. 사람들은 아버지와 구별해 그를 작은 카날, 카날레토라고 불렀어요.

  2. 1725베네치아

    1725년 7월 14일, 베네치아의 화가 알레산드로 마르케시니가 토스카나 루카의 옷감 상인 스테파노 콘티에게 편지를 써요. 콘티는 베네치아 풍경화가 갖고 싶었고, 처음에는 나이 든 풍경 화가 카를레바리스의 그림을 원했어요. 마르케시니는 그 부탁을 받아들이는 대신 젊은 카날레토를 권했어요.

    이렇게 해서 카날레토는 콘티를 위해 베네치아 풍경 네 점을 그렸어요. 콘티는 산 그림마다 값과 화가가 쓴 설명을 꼼꼼히 남겼어요. 이 편지와 기록 덕분에 우리는 카날레토가 그림을 현장에서 준비하곤 했다는 것도 알아요.

  3. 1727베네치아

    아일랜드 사람 오언 맥스위니가 베네치아에서 영국의 리치먼드 공작에게 편지를 보내요. 그는 공작이 주문한 카날레토의 그림을 챙기는 중이었어요. 편지에서 그는 이 화가가 변덕스럽고, 해낼 수 있는 것보다 일이 훨씬 많다고 투덜댔어요.

    「산마르코 광장」은 이 무렵의 그림이에요. 대성당 앞 넓은 광장에 천막이 줄지어 섰고, 삼각 모자를 쓴 남자들과 장 보는 사람들이 오가요. 미술관은 그림 속 광장 바닥이 1720년대 중반의 바닥 공사 모습을 보여 준다고 설명해요.

    이때 그린 그림산마르코 광장
  4. 1735베네치아

    베네치아에 사는 영국 상인 조지프 스미스의 집에는 카날레토의 그림이 차곡차곡 쌓여 갔어요. 1735년, 스미스가 가진 대운하 풍경 열네 점이 판화로 새겨져 한 권의 책으로 나와요. 판화를 새긴 사람은 건축가이자 판화가 안토니오 비센티니였어요.

    이 책 덕분에 베네치아에 와 보지 못한 사람들도 카날레토의 물길을 넘겨 볼 수 있었어요. 스미스는 영국 여행자들과 화가를 이어 주는 창구가 되었어요. 1762년 그는 모아 둔 카날레토 그림을 영국 왕 조지 3세에게 팔았어요.

  5. 1741베네치아

    1740년, 유럽에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이 터져요. 알프스를 넘어오던 영국 손님의 발길이 줄었어요. 일감이 줄자 카날레토는 동판을 들고 판화를 새기기 시작했어요.

    그는 이 판화 묶음에 일부는 실제 장소에서, 일부는 상상으로 그린 풍경이라는 제목을 달고 조지프 스미스에게 바쳤어요. 이 사이트의 「베네치아 상상 풍경 (베두테 연작)」도 그중 한 장이에요. 왼쪽 집 벽에는 MDCCXLI, 곧 1741이라는 로마 숫자가 새겨져 있어요. 오른쪽 담 위에는 한 남자가 걸터앉아 아래 물가의 배들을 내려다봐요.

    이때 그린 그림베네치아 상상 풍경 (베두테 연작)
  6. 1746런던

    1746년 5월, 카날레토가 런던에 닿아요. 그의 이름은 이미 영국에 알려져 있었어요. 곧 리치먼드 공작의 런던 저택 창가에서 템스 강과 도시를 내려다본 풍경 두 점을 그렸어요.

    그런데 3년쯤 지나자 이상한 소문이 돌았어요. 런던에서 그린 그림이 예전만 못하니 진짜 카날레토가 아니라는 말이었어요. 1749년 7월 25일, 그는 신문에 광고를 냈어요. 골든 스퀘어 근처 실버 거리의 가구장이 위건의 집, 곧 자기 숙소로 와서 새로 그린 세인트제임스 공원 그림을 직접 보라는 내용이었어요.

  7. 1752워릭

    런던에서 그를 거듭 찾은 손님 가운데 워릭성의 주인 브룩 경이 있었어요. 브룩 경은 조경가 랜슬롯 브라운에게 성 둘레를 새로 꾸미게 하던 참이었어요. 카날레토는 이 성을 여러 방향에서 바라본 유화와 소묘를 남겼어요.

    「워릭성: 동쪽 정면」은 1752년의 소묘예요. 돌 하나하나가 보이는 성벽 앞으로 구경 온 사람들이 서 있고, 맨 아래에서는 아이 하나가 긴 막대를 메고 달려가요. 그는 1755년 무렵 베네치아로 돌아갔어요.

    이때 그린 그림워릭성: 동쪽 정면
  8. 1763베네치아

    1763년 1월, 베네치아 미술 아카데미 회원을 뽑는 투표에서 예순다섯 살 카날레토가 떨어져요. 그해 9월 11일, 그는 다시 투표에 올라 회원이 되었어요. 아카데미에 내야 하는 입회 작품은 한참 늦은 1765년에야 냈어요. 실제 풍경이 아니라 상상으로 지은 건물을 그린 그림이었어요.

    카날레토는 1768년 4월 19일 밤 베네치아에서 세상을 떠났어요. 그는 어려서 세례를 받은 산리오 성당에 묻혔어요. 그가 그린 베네치아는 지금 런던과 뉴욕, 이 사이트의 그림 속에 흩어져 남아 있어요.

함께한 사람들

  • 베르나르도 카날아버지이자 첫 스승으로, 함께 로마의 오페라 무대 배경을 그렸어요.
  • 조지프 스미스베네치아의 영국 상인이자 뒤에 영사가 된 사람으로, 카날레토의 가장 큰 손님이었어요.
  • 오언 맥스위니베네치아에서 리치먼드 공작의 주문을 챙기며 카날레토 이야기를 편지로 남긴 아일랜드 사람이에요.
  • 리치먼드 공작영국의 귀족으로, 베네치아 시절부터 카날레토 그림을 주문했고 런던에서 저택 풍경을 맡겼어요.
  • 안토니오 비센티니스미스가 가진 카날레토 그림을 판화로 새겨 책으로 낸 판화가예요.
  • 베르나르도 벨로토누이의 아들로, 카날레토의 작업실에서 그림을 배워 풍경 화가가 되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