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눈에
- 잉글랜드 워릭성의 동쪽 정면을 성 밖 풀밭에서 바라본 풍경 소묘예요. 왼쪽과 오른쪽에 높은 탑, 가운데에 성문이 서 있어요.
- 베네치아 화가 카날레토가 영국에 머물던 1752년, 펜과 갈색 잉크에 회색 물감을 엷게 칠해 그렸어요.
- 돌벽 하나하나는 자로 잰 듯 꼼꼼한데, 풀밭의 사람들은 몇 번의 펜 놀림으로 재빨리 그려 놓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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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의 높은 탑 꼭대기를 확대해 보세요. 성가퀴가 톱니처럼 둘러 있고, 그 아래에 받침돌이 줄지어 튀어나와 있어요. 지붕 위에는 바람개비가 꽂혀 있어요. 탑 둘레에는 작은 새들이 짧은 갈고리 선으로 날고 있어요.
가운데 성문을 보세요. 아치형 문 위로 창과 벽이 층층이 올라가고, 벽에는 십자 모양의 좁은 틈이 뚫려 있어요. 그 위에 마름모꼴 판이 하나 붙어 있어요. 회색 물감을 엷게 펴 발라 해가 비치는 면과 그늘진 면을 나누었어요.
아래 가운데 풀밭으로 내려오세요. 치마가 넓게 부푼 여인들이 남자 하나와 함께 서 있어요. 치마는 둥근 선 몇 개와 회색 물감 한 번이 전부예요. 발밑의 짙은 회색이 그림자가 되어, 사람들이 풀밭에 단단히 서 있게 해요.
성벽 앞의 두 남자를 확대해 보세요. 한 사람이 긴 막대를 들어 위쪽을 가리키고, 그 곁에 다른 사람이 바짝 붙어 서 있어요. 성을 구경하러 온 사람들처럼 보여요.
맨 아래, 혼자 달리는 아이를 보세요. 끝이 갈퀴처럼 갈라진 긴 막대를 메고, 한쪽 발을 뒤로 차올렸어요. 웅장한 성 앞에서 이 작은 아이 덕분에 그림이 살아 움직여요.
이 그림이 그려진 때
1752년, 쉰 살을 넘긴 카날레토는 고향 베네치아에서 먼 런던에 살고 있었어요. 그는 극장 무대 배경을 그리던 아버지 베르나르도 카날 곁에서 그림을 시작했어요. 카날레토라는 이름도 아버지와 구별하는 작은 카날이라는 뜻이에요. 그런 그가 베네치아 풍경으로 영국 여행자들 사이에 이름을 얻었어요.
베네치아에서 그를 영국 손님들과 이어 준 사람은 영국 상인 조지프 스미스였어요. 스미스는 훗날 베네치아 주재 영국 영사가 되었고, 그가 모은 카날레토 그림들은 1762년 영국 왕 조지 3세에게 넘어갔어요. 그런데 1740년대 유럽에 전쟁이 이어지자 베네치아를 찾는 여행자가 줄었어요. 1746년 카날레토는 손님들을 따라 런던으로 건너갔어요.
런던에서는 묘한 소문이 돌았어요. 영국에서 그린 그림이 베네치아 때만 못하니 진짜 카날레토가 아니라는 말이었어요. 카날레토는 신문에 광고를 내어, 새로 그린 그림을 자기 숙소에 와서 직접 보라고 사람들을 불렀어요.
이 무렵 그를 거듭 찾은 손님이 워릭성의 주인 브룩 경이었어요. 브룩 경은 조경가 랜슬롯 브라운에게 성 둘레 땅을 새로 꾸미게 하던 참이었어요. 카날레토는 이 성을 여러 방향에서 바라본 유화와 소묘를 남겼어요. 이 소묘는 1975년 로버트 레먼 컬렉션과 함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왔어요.
카날레토는 1755년 무렵 베네치아로 돌아갔고, 1768년 그곳에서 세상을 떠났어요. 다시 성벽의 돌을 하나하나 보세요. 런던 사람들이 의심하던 그 솜씨가 이 종이 위에 그대로 남아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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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생각해 볼 질문
- 찾아보기오른쪽 탑 둘레를 나는 새는 모두 몇 마리일까요?
- 왜일까카날레토는 왜 성은 꼼꼼하게, 사람들은 아주 가볍게 그렸을까요?
- 나라면카날레토는 손님이 줄자 나라를 옮겨 새 손님을 찾았어요. 오늘 일자리를 찾아 다른 나라로 떠나는 사람들에게 우리는 어떤 이웃이 되어야 할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