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이 남은 그림은 아직 찾지 못했어요. 대신 이 화가의 다른 그림들

화가 · 17세기

니콜라 푸생

Nicolas Poussin · 1594–1665

노르망디의 작은 마을을 떠나 로마에 자리 잡고, 고대의 이야기와 반듯한 풍경을 생각하며 보는 그림으로 풀어낸 프랑스 화가예요.

71살았던 해
17주로 그린 세기

생애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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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라 푸생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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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612 무렵레장들리

    노르망디의 작은 마을 레장들리에 화가 캉탱 바랭이 와요. 마을 성당에 걸 제단화를 그리러 온 거예요. 바랭의 제단화는 지금도 그 성당에 남아 있어요.

    그 무렵 열여덟 살쯤이던 니콜라 푸생은 고향을 떠나 파리로 가요. 마을에 온 진짜 화가를 가까이에서 본 일은 그의 앞날과 맞닿아 있어요.

  2. 1622–23파리

    이탈리아 시인 잠바티스타 마리노가 파리에 머물고 있었어요. 마리노는 푸생을 집에 들이고 그림을 그리게 했어요. 옛 전기 작가 벨로리는 마리노가 병으로 집에 묶여 있는 동안 푸생이 그림 그리는 모습을 지켜보며 시간을 보냈다고 적었어요.

    푸생은 마리노를 위해 열다섯 장의 그림을 그렸고, 그 가운데 열한 장이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 장면이에요. 마리노는 1623년 이탈리아로 돌아갔어요. 푸생은 이듬해 봄 드디어 로마에 닿았어요.

  3. 1628–30로마

    1628년 2월, 성 베드로 대성당을 돌보는 기관이 푸생에게 제단화를 맡겨요. 성 에라스무스 제단에 걸 「성 에라스무스의 순교」예요. 로마에 온 지 몇 해 안 된 프랑스 화가에게는 큰 기회였어요. 이 그림은 뒤에 모자이크 사본으로 바뀌어 지금은 바티칸 미술관에 걸려 있어요.

    얼마 뒤 산 루이지 데이 프란체시 성당의 성모 경당을 꾸미는 일에는 푸생도 이름을 올렸지만, 일은 샤를 멜랭에게 돌아갔어요. 그 무렵 푸생은 큰 병을 앓았고, 로마에 사는 프랑스 사람 뒤게의 집안이 그를 돌봤어요. 1630년 그는 그 집 딸 안마리 뒤게와 결혼했어요.

  4. 1633–34 무렵로마

    뒤엉킨 사람들을 그릴 때 푸생은 먼저 작은 무대를 꾸몄어요. 옛 전기 작가들은 그가 밀랍으로 작은 인형을 빚어 상자 속에 세우고, 빛을 바꿔 가며 구도를 잡았다고 적었어요. 「사비니 여인들의 납치」도 이 무렵의 그림이에요.

    그는 들판에도 나갔어요. 독일 화가 요아힘 폰 잔드라르트는 뒷날 책에, 자신과 푸생, 클로드 로랭이 함께 로마 근처 티볼리로 말을 타고 가서 자연을 그렸다고 적었어요. 같은 도시에 살던 두 프랑스 화가는 그렇게 같은 풍경 앞에 섰어요.

    이때 그린 그림사비니 여인들의 납치
  5. 1640로마

    파리에서 편지가 거듭 와요. 왕의 건축 담당 대신 쉬블레 드 누아예가 푸생을 프랑스로 부르는 편지였어요. 푸생은 로마를 떠나기 싫어 오래 미뤘어요. 결국 폴 프레아르 드 샹틀루가 로마로 와서 그를 데려갔어요.

    로마를 떠나던 해 푸생은 「파트모스섬의 성 요한이 있는 풍경」을 그렸어요. 노인이 된 요한이 노란 망토를 두르고 앉아 글을 쓰고, 등 뒤에는 독수리가 서 있어요. 왼쪽 아래에는 부서진 기둥이 뒹굴고, 멀리 오벨리스크와 신전이 보여요. 같은 해 그린 「성 마태오가 있는 풍경」과 함께 네 복음서 저자 연작을 계획했을지도 몰라요.

    이때 그린 그림파트모스섬의 성 요한이 있는 풍경
  6. 1641–42파리

    1640년 12월, 푸생은 파리에 도착해요. 왕은 그에게 튈르리 정원 안의 작은 집을 내주고, 왕의 첫째 화가라는 자리를 줬어요. 루브르 궁 큰 회랑 장식, 왕실 인쇄소 책의 첫 장 그림, 왕궁 경당 제단화까지 일이 한꺼번에 쏟아졌어요.

    파리의 화가들은 반기지 않았어요. 시몽 부에 쪽 사람들과 다툼이 생겼어요. 1642년 9월, 그는 아내를 데리러 간다며 로마로 떠났어요. 그리고 다시는 파리로 돌아오지 않았어요.

  7. 1650로마

    샹틀루는 오래전부터 푸생의 초상을 갖고 싶어 했어요. 로마의 초상화가에게 그려 달라고 부탁하자는 말도 했어요. 푸생은 고민 끝에 스스로 자기 얼굴을 그리기로 했어요.

    자화상은 두 점이 되었어요. 먼저 그린 한 점은 또 다른 후원자 장 푸앵텔에게 갔고, 지금 베를린에 있어요. 두 번째 자화상에는 '로마, 희년 1650'이라는 글이 들어갔어요. 이 그림은 샹틀루에게 갔고, 지금은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 있어요.

  8. 1658–65로마

    나이 든 푸생의 손은 떨렸어요. 그는 편지에서 손이 떨려 일이 더디다고 여러 번 털어놓았어요. 그래도 1658년, 프랑스 수집가 미셸 파사르를 위해 「떠오르는 해를 찾는 눈먼 오리온」을 그렸어요. 앞을 못 보는 거인이 어깨 위 작은 안내자를 따라 해 뜨는 쪽으로 걸어가요.

    1664년 아내 안마리가 먼저 세상을 떠났어요. 이듬해 11월 19일 푸생도 로마에서 눈을 감았고, 산 로렌초 인 루치나 성당에 묻혔어요. 그의 그림은 그 뒤 여러 나라로 흩어졌어요. 「떠오르는 해를 찾는 눈먼 오리온」은 1924년, 「사비니 여인들의 납치」는 1946년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들어왔고, 「파트모스섬의 성 요한이 있는 풍경」은 1930년 시카고 미술관이 사들였어요.

    이때 그린 그림떠오르는 해를 찾는 눈먼 오리온

함께한 사람들

  • 잠바티스타 마리노파리에서 푸생을 집에 들이고 그림을 맡긴 이탈리아 시인이에요.
  • 안마리 뒤게병든 푸생을 돌본 집안의 딸로, 1630년 그의 아내가 되었어요.
  • 가스파르 뒤게아내의 남동생으로, 푸생에게 그림을 배워 풍경화가가 되었어요.
  • 카시아노 달 포초고대 로마를 깊이 공부한 학자이자 푸생을 오래 후원한 사람이에요.
  • 폴 프레아르 드 샹틀루푸생을 파리로 데려간 사람으로, 평생 편지를 주고받으며 그림을 주문했어요.
  • 클로드 로랭같은 로마에 살던 프랑스 풍경화가로, 함께 티볼리에 그림을 그리러 갔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