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가 · 19세기
존 컨스터블
John Constable · 1776–1837
방앗간 집 아들로 자라, 평생 고향 서퍽의 강과 들판과 하늘을 비에 젖은 빛 그대로 그리려 한 영국의 풍경화가예요.
생애 장면
존 컨스터블의 삶,
장면으로 따라가기
- 1795데덤
젊은 존이 이름난 수집가 앞에 서 있어요. 런던에서 온 조지 보몬트 경이 데덤에 머물던 참이었고, 그는 클로드 로랭의 풍경화 「하갈과 천사」를 가지고 있었어요. 존은 그 그림을 이곳 데덤에서 처음 봤어요.
존의 아버지 골딩 컨스터블은 스타우어강 가 플랫퍼드와 데덤에 방앗간을 둔 곡물 상인이었어요. 아버지는 맏아들이 집안일을 잇기를 바랐어요. 몇 해 뒤 존은 보몬트 경의 런던 집에서 이 클로드 그림을 베껴 그렸어요.
- 1799런던
1799년, 스물두 살의 컨스터블이 왕립 아카데미 학교에 들어가요. 아버지는 걱정이 많았지만 끝내 아들의 공부 비용을 대 주기로 했어요. 방앗간 대신 그림을 고른 셈이에요.
런던에서 그는 왕립 아카데미 회원인 풍경화가 조지프 패링턴을 몇 번이고 찾아갔어요. 패링턴은 그해 일기에 이 젊은이의 방문을 적어 두었어요. 패링턴은 그 뒤로도 오래 컨스터블의 조언자가 되었어요.
- 1816런던
1816년 10월 2일, 런던의 세인트마틴인더필즈 교회에서 컨스터블과 마리아 비크넬이 결혼해요. 두 사람이 사랑을 키운 지 일곱 해 만이었어요. 마리아의 할아버지 더런드 러드 박사는 이스트버골트의 교구 목사였는데, 벌이가 불안한 화가를 손녀의 짝으로 반기지 않았고 유산을 주지 않겠다고 했어요.
길을 연 것은 그해 봄의 슬픔이었어요. 아버지 골딩이 세상을 떠나며 유산을 남겼거든요. 결혼식 주례는 친구 존 피셔 목사가 맡았고, 신혼부부는 도싯의 오스밍턴에 있는 피셔의 목사관에서 몇 주를 보냈어요.
- 1818우드브리지
1818년 4월 30일, 서퍽 우드브리지의 변호사 제임스 펄럼이 컨스터블에게 편지를 써요. 아내의 초상을 그려 준 일을 두고, 아내에게 너그럽게 베푼 호의라며 고마워하는 편지였어요. 그 아내 프랜시스도 아마추어로 초상화를 그리는 사람이었어요.
풍경화는 잘 팔리지 않았어요. 갓 가정을 꾸린 컨스터블에게 초상화는 살림을 받쳐 주는 일이었어요. 그녀의 모자 띠에 매인 은빛 리본을 보세요. 밝은 물감 몇 번으로 빠르게 그어 반짝임을 냈어요.
이때 그린 그림제임스 펄럼 부인 - 1824파리
1824년, 파리 살롱 벽에 영국 시골 그림 한 점이 걸려요. 건초 마차가 얕은 강물을 건너는 큰 그림이에요. 그림은 파리에서 큰 화제가 되었고, 국왕 샤를 10세는 이 그림에 금메달을 주었어요. 오늘 우리가 「건초 마차」라고 부르는 그림이에요.
사실 이 그림은 세 해 전 런던에서 외면받았어요. 1821년 「풍경: 정오」라는 이름으로 왕립 아카데미에 걸렸지만, 사겠다는 사람이 없었거든요. 1824년에야 파리의 그림상 존 애로스미스가 사 가서 살롱에 내놓았어요. 정작 컨스터블은 한 번도 영국 밖으로 나가지 않았어요.
- 1829런던
1828년 11월 23일, 마리아가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나요. 남은 아이가 일곱이었고, 막내는 그해 1월에 태어난 아기였어요. 마리아는 햄프스테드의 세인트존 교회 묘지에 묻혔어요.
석 달 뒤인 1829년 2월, 컨스터블은 쉰두 살에 왕립 아카데미 정회원으로 뽑혀요. 마지막 투표에서 한 표 차였어요. 축하하러 온 회장 토머스 로런스는, 훌륭한 역사화가들이 여럿 있는데 풍경화가가 뽑혔으니 운이 좋은 줄 알라는 뜻으로 말했어요. 컨스터블은 이 영광이 너무 늦게 왔다고 느꼈어요.
- 1836런던
1836년 5월과 6월, 컨스터블이 런던 왕립 연구소의 강단에 서요. 풍경화의 역사를 네 번에 걸쳐 강연했어요. 몇 해 전에는 판화가 데이비드 루커스와 함께 자기 그림을 메조틴트 판화로 옮긴 연작 「잉글랜드 풍경」을 냈지만, 잘 팔리지 않아 손해를 봤어요.
그해 그는 「스토크바이네일런드」를 그렸어요. 고향 이스트버골트에서 몇 마일 떨어진 마을이에요. 왼쪽 멀리 교회 탑이 솟았고, 오른쪽에는 그늘진 나무 터널 같은 시골길이 열려요. 아래쪽의 검은 말과 수레, 쟁기를 보세요. 붓보다 팔레트 나이프로 긁고 문질러 젖은 아침 공기를 만들었어요.
이때 그린 그림스토크바이네일런드 - 1837런던
1837년 3월 31일, 런던 샬럿 스트리트의 집에서 컨스터블은 갑자기 앓아눕고 그날 밤 세상을 떠나요. 예순 살이었어요. 그는 햄프스테드의 마리아 곁에 묻혔어요.
그해 친구들은 돈을 모아 그의 그림 「옥수수밭」을 사서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 기증했어요. 우드브리지 변호사 부인의 초상은 지금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마지막 해의 젖은 시골길은 시카고 미술관에 걸려 있어요.
남긴 말
What say you to a summer morning?
여름 아침 하나, 어떻게 생각하나? 「스토크바이네일런드」를 두고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 쓴 말이에요.
함께한 사람들
- 골딩 컨스터블플랫퍼드와 데덤에 방앗간을 둔 아버지로, 걱정 끝에 아들의 그림 공부를 밀어 주었어요.
- 마리아 비크넬일곱 해의 기다림 끝에 결혼한 아내로, 일곱 아이를 낳고 1828년에 세상을 떠났어요.
- 존 피셔솔즈베리 주교의 조카인 목사로, 두 사람의 결혼식 주례를 서고 평생 편지를 주고받은 친구예요.
- 더런드 러드 박사이스트버골트의 교구 목사이자 마리아의 할아버지로, 두 사람의 결혼을 반대했어요.
- 조지프 패링턴왕립 아카데미 회원으로, 런던에 온 젊은 컨스터블에게 오래 조언해 준 선배예요.
- 데이비드 루커스컨스터블의 그림을 메조틴트 판화 연작 「잉글랜드 풍경」으로 옮긴 판화가예요.
같은 시대를 산 화가
같은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
카스파어 다비트 프리드리히Caspar David Friedrich1774–1840
엘리자베트 비제르브룅Elisabeth Louise Vigée Le Brun1755–1842
조지프 맬러드 윌리엄 터너Joseph Mallord William Turner1775–1851
가쓰시카 호쿠사이Katsushika Hokusai1760–1849
장오귀스트도미니크 앵그르Jean Auguste Dominique Ingres1780–1867
존 필립 심프슨John Philip Simpson1782–1847
토머스 로런스Sir Thomas Lawrence1769–1830
프란시스코 고야Goya1746–18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