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가 · 18세기
토머스 로런스
Sir Thomas Lawrence · 1769–1830
시골 여관 주인의 아들로 손님들 얼굴을 그리던 소년이, 왕과 교황과 유럽의 황제들을 그리고 왕립 아카데미 회장이 된 영국의 초상화가예요.
생애 장면
토머스 로런스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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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80디바이지스
1780년 4월, 런던에서 바스로 가던 마차가 디바이지스의 블랙 베어 여관에 멈춰요. 내린 손님 가운데 작가 패니 버니와 그 친구 스레일 부인이 있었어요. 여관 주인의 아들 토머스는 이런 손님들 앞에서 시를 외우고 얼굴을 그려 주곤 했어요.
버니는 일기에 열 살 난 아주 사랑스러운 소년을 만났다고 적었어요. 가족은 그해 바스로 옮겼고, 소년은 그곳에서 파스텔 초상을 그려 집안 살림을 도왔어요.
- 1787런던
1787년 9월 13일, 열여덟 살의 로런스가 런던 왕립 아카데미 학교에 들어가요. 왕립 아카데미 소장품 기록에 이 날짜가 남아 있어요. 바스에서 파스텔로 이름을 얻은 소년이, 이제 유화로 런던에서 승부를 보려는 거예요.
그때 아카데미 회장은 예순넷의 초상화가 조슈아 레이놀즈였어요. 다섯 해 뒤, 이 노화가가 맡던 자리 하나가 로런스에게 돌아오게 돼요.
- 1789윈저
1789년 9월, 스무 살의 로런스가 윈저 성에 불려 가 샬럿 왕비를 그려요. 하지만 왕비는 완성된 그림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어요. 왕도 왕비도 그림을 사지 않았고, 그림은 로런스에게 남았어요.
이 왕비 초상은 1927년에야 런던 내셔널 갤러리가 사들였어요. 이듬해 1790년 전시에 그는 이 그림과 나란히 배우 엘리자베스 패런의 전신 초상을 걸었어요. 흰 비단 망토의 여인이 들판에서 걸음을 멈추고 어깨 너머로 돌아봐요.
이때 그린 그림엘리자베스 패런 - 1792런던
1792년 2월, 조슈아 레이놀즈가 세상을 떠나요. 국왕 조지 3세는 레이놀즈가 맡고 있던 국왕의 초상 화가 자리를 스물두 살의 로런스에게 주었어요. 그는 바로 전해인 1791년 11월에 왕립 아카데미 준회원으로 뽑혀 있었어요.
1794년에는 정회원이 되었어요. 여관집 소년이 영국 미술계의 한가운데로 들어선 거예요.
- 1806블랙히스
1806년, 왕세자가 따로 사는 아내 캐럴라인 왕세자비의 품행을 뒷조사해요. 사람들은 이 일을 은밀한 조사라고 불렀어요. 그런데 이 조사에 로런스의 이름이 나와요.
그는 몇 해 전 블랙히스의 왕세자비 저택 몬터규 하우스에 머물며 왕세자비와 어린 공주를 그렸어요. 로런스는 자기 이름을 지키려고 맹세 진술서를 냈어요. 조사는 처벌할 만한 증거가 없다는 결론으로 끝났어요.
- 1810런던
1810년, 로런스와 아주 가까운 벗이던 이사벨라 울프가 런던 주재 덴마크 영사인 남편 옌스 울프와 따로 살게 돼요. 화가 존 컨스터블은 편지에서 그녀를 로런스와 아주 가까운 사이로, 로런스가 자주 그린 사람으로 적었어요.
로런스는 그녀의 초상을 1803년에 시작해 1815년에야 마쳤어요. 터번을 쓴 그녀가 손으로 이마를 짚고, 쿠션 위에 펼친 큰 책을 내려다봐요. 시카고 미술관은 그 책이 미켈란젤로 시스티나 천장의 델포이 무녀를 찍은 판화라고 설명해요.
이때 그린 그림이사벨라 울프 - 1819로마
1819년 5월, 로런스가 로마에 도착해요. 섭정 왕세자의 명을 받아 교황 비오 7세를 그리러 온 길이었어요. 1815년 기사 작위를 받은 그는, 앞서 1818년 가을 아헨 회의에서 유럽 군주들과 정치가들을 그리고 빈을 거쳐 왔어요.
교황은 그에게 아홉 번 앉아 주었어요. 이 그림들은 지금 윈저 성의 워털루 방에 걸려 있어요. 이듬해 1820년, 로런스는 왕립 아카데미 회장에 뽑혔어요.
- 1830런던
1830년 1월 7일, 왕립 아카데미 회장 로런스가 런던에서 갑자기 세상을 떠나요. 예순 살이었어요. 1월 21일, 그는 성대한 장례 행렬 끝에 성 바오로 대성당에 묻혔어요.
관을 든 사람 가운데에는 정치가 로버트 필이 있었어요. 화가 터너도 그 자리에 있었고, 그날 장면을 기억으로 그린 스케치를 남겼어요. 디바이지스 여관에서 손님 얼굴을 그리던 소년의 손이 남긴 이사벨라 울프의 비단 옷은, 지금 시카고 미술관에서 그때처럼 반짝여요.
함께한 사람들
- 조슈아 레이놀즈왕립 아카데미 초대 회장으로, 그가 세상을 떠난 뒤 로런스가 국왕의 초상 화가 자리를 이어받았어요.
- 샬럿 왕비1789년 윈저 성에서 로런스에게 초상을 그리게 했지만 완성된 그림을 사지 않았어요.
- 엘리자베스 패런1790년 전시에 전신 초상이 걸린 런던 무대의 희극 배우예요.
- 이사벨라 울프가까운 벗으로, 로런스는 그녀의 초상을 열두 해에 걸쳐 그렸어요.
- 비오 7세1819년 로마에서 로런스 앞에 아홉 번 앉아 준 교황이에요.
- J. M. W. 터너로런스의 장례식에 함께했고 그 장면을 스케치로 남긴 화가예요.
같은 시대를 산 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