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눈에
- 붉은 천을 두른 타히티 여인이 어깨에 아이를 태우고 서 있고, 두 여인이 손을 모아 인사하는 장면이에요. 엄마와 아이 머리에는 금빛 둥근 테가 있어요.
- 프랑스 화가 폴 고갱이 남태평양의 섬 타히티에 처음 건너간 해인 1891년에 그렸어요.
- 성경 속 성모와 아기 예수 이야기를 타히티의 숲과 사람들 속으로 옮겨 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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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 위, 엄마와 아이의 머리 뒤를 보세요. 가느다란 금빛 고리가 둥글게 떠 있어요. 서양 그림에서 성모와 아기 예수를 알려 주는 후광이에요. 그런데 얼굴도 옷도 피부색도 타히티 사람이에요.
왼쪽 꽃나무 뒤를 확대해 보세요. 검은 머리를 늘어뜨린 사람이 꽃가지 사이에 반쯤 숨어 있어요. 양옆으로 노란 날개가 비죽 나와 있어요. 천사가 숲에 섞여 있는 거예요.
가운데 두 여인의 손을 보세요. 둘 다 가슴 앞에서 두 손바닥을 맞대고 있어요. 고갱은 이 두 사람의 자세를 자바섬 보로부두르 사원의 돋을새김 사진에서 빌려 왔어요. 기도하는 듯, 인사하는 듯한 손이에요.
가운데 아래 그릇을 보세요. 노르스름한 바나나가 수북이 담겨 있어요. 왼쪽에도 붉고 푸른 열매가 쌓여 있어요. 성당 제단에 올리는 제물처럼, 섬의 먹을거리가 그림 맨 앞에 놓였어요.
왼쪽 아래 노란 띠에 글자가 있어요. IA ORANA MARIA, 타히티 말로 안녕하세요, 마리아라는 뜻이에요. 천사가 마리아에게 건넨 인사, 아베 마리아를 섬의 말로 바꾼 거예요.
이 그림이 그려진 때
1891년 6월, 마흔세 살의 고갱이 타히티의 항구 파페에테에 내렸어요. 주식 거래 일을 그만두고 그림에 뛰어든 지 여러 해였지만 그림은 잘 팔리지 않았어요. 덴마크 사람인 아내와 아이들은 코펜하겐에 남아 있었고, 뱃삯은 그해 2월 파리 경매에서 자기 그림을 팔아 마련했어요.
고갱은 서양 문명에서 벗어난 곳을 찾아왔다고 여겼어요. 하지만 섬은 이미 프랑스의 식민지였고, 선교사들이 가톨릭과 개신교를 전해 놓은 뒤였어요. 그가 도착하고 얼마 되지 않아 타히티의 마지막 왕 포마레 5세가 세상을 떠났어요. 프랑스 관리들로 북적이는 파페에테에 실망한 고갱은 곧 남쪽 해안 마을 마타이에아로 옮겨 갔어요.
이 그림에 대해서는 고갱이 직접 남긴 설명이 있어요. 1892년 3월의 편지에서, 노란 날개의 천사가 두 타히티 여인에게 마리아와 예수를 보여 주는 장면이고 마리아와 예수도 타히티 사람이라고 적었어요. 섬사람들이 믿게 된 그리스도교 이야기를 섬의 얼굴과 색으로 다시 그린 거예요.
1893년 프랑스로 돌아온 고갱은 그해 가을 파리의 뒤랑뤼엘 화랑에서 타히티 그림 전시를 열었어요. 이 그림을 목록 맨 앞에 올렸지만, 전시는 기대만큼 팔리지 않았어요. 이 그림은 그때 팔린 몇 안 되는 작품 가운데 하나였어요.
고갱은 1895년 다시 남태평양으로 떠났고, 1903년 마르키즈 제도에서 세상을 떠났어요. 이 그림은 뉴욕의 수집가 샘 루이슨이 1951년 남긴 유증으로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왔어요.
이제 왼쪽 꽃나무 사이를 다시 보세요. 꽃가지 뒤로 비죽 나온 노란 날개, 고갱이 편지에서 설명한 바로 그 천사가 아직 거기 숨어 있어요.
함께 생각해 볼 질문
- 찾아보기오른쪽 아래 구석에서 고갱의 서명과 그린 해를 찾아볼 수 있나요?
- 왜일까고갱은 왜 제목을 프랑스 말이 아니라 타히티 말로 그림 속에 써 넣었을까요?
- 나라면고갱은 다른 나라 사람들의 모습을 빌려 자기 이야기를 그렸어요. 요즘 우리가 다른 문화를 옷이나 광고에 가져다 쓸 때, 어디까지가 존중이고 어디부터가 문제일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