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가 · 19세기
폴 고갱
Paul Gauguin · 1848–1903
파리 증권가에서 일하던 일요 화가였다가 모든 것을 그림에 걸고 브르타뉴와 아를을 거쳐 남태평양 섬까지 간, 굵은 윤곽선과 뜨거운 색의 화가예요.
생애 장면
폴 고갱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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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49페루로 가는 바다
한 살배기 폴을 태운 배가 남아메리카 끝을 돌고 있어요. 신문 기자였던 아버지 클로비스는 새 일을 찾아 가족을 데리고 페루로 가던 길이었어요. 그런데 그 뱃길에서 아버지가 숨을 거두었고, 칠레 남쪽 바닷가에 묻혔어요.
남은 가족은 리마에 사는 외가 친척들에게 몸을 맡겼어요. 폴의 외할머니는 페루 귀족 집안 핏줄을 이은 작가이자 운동가 플로라 트리스탕이었어요. 폴은 여섯 살 무렵까지 리마의 넉넉한 집에서 자랐고, 그 뒤 어머니와 함께 프랑스로 돌아왔어요.
- 1873파리
스물다섯 살의 고갱이 덴마크에서 온 여인 메테 가드와 결혼해요. 그는 배를 타고 바다를 여러 해 떠돈 뒤, 파리 증권 거래 일로 꽤 많은 돈을 벌고 있었어요. 그 일자리를 이어 준 사람은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뒤 그의 후견인이 된 귀스타브 아로자였어요.
아로자는 그림을 모으는 사람이었고, 고갱은 그 집에서 그림을 보며 쉬는 날마다 붓을 들었어요. 1876년, 이 일요 화가가 그린 비로플레 풍경 한 점이 파리 살롱 전시에 뽑혀 걸렸어요.
- 1885코펜하겐
코펜하겐의 처가에서 고갱이 짐을 꾸려요. 1882년 주식 시장이 무너진 뒤 그는 이듬해 증권 일을 그만두고 그림에만 매달렸어요. 돈이 떨어지자 가족은 메테의 고향 코펜하겐으로 옮겨 왔지만, 그곳에서도 그림은 팔리지 않았어요.
1885년 6월, 고갱은 여섯 살 아들 클로비스 하나만 데리고 파리로 돌아갔어요. 생활비가 모자라 거리에 광고 벽보를 붙이는 일까지 했어요. 그 뒤 그는 다시는 아내와 아이들과 한집에 살지 않았어요.
- 1887파나마와 마르티니크
1887년 4월, 고갱은 젊은 화가 친구 샤를 라발과 함께 파나마로 가는 배에 올라요. 따뜻한 땅에서 싸게 살며 그림을 그리겠다는 계획이었어요. 하지만 운하 공사로 들끓는 파나마는 그가 꿈꾼 곳이 아니었고, 가져간 돈은 금세 바닥났어요.
6월, 두 사람은 겨우 돈을 모아 카리브해의 섬 마르티니크로 건너갔어요. 고갱은 그곳에서 이질과 말라리아에 시달려 몇 달을 앓았어요. 그래도 섬의 바다와 과일 따는 여인들을 그린 그림을 들고 그해가 가기 전에 파리로 돌아왔어요.
- 1888아를
1888년 10월 23일, 고갱이 남프랑스 아를의 노란 집 문 앞에 서요. 몇 달 동안 함께 그리자고 편지를 보낸 빈센트 반 고흐의 집이에요. 두 사람은 한 지붕 아래서 같은 풍경을 나란히 그렸어요.
노란 집 바로 건너편에는 공원이 있었어요. 「아를의 여인들 (미스트랄)」은 그 공원을 그린 그림이에요. 검은 숄을 두른 여인들이 입을 가리고 지나가고, 오른쪽에는 주황빛 원뿔 두 개가 서 있어요. 아래쪽 빨간 울타리가 길을 막듯 가로놓였어요.
하지만 둘 사이는 점점 날카로워졌어요. 12월 23일 밤, 반 고흐가 자기 귀를 베는 일이 벌어졌어요. 고갱은 빈센트의 동생 테오를 불러들인 뒤 곧 아를을 떠났어요. 함께 지낸 시간은 두 달 남짓이었어요.
이때 그린 그림아를의 여인들 (미스트랄) - 1891파리에서 타히티로
1891년 2월 23일, 파리의 경매장 드루오에서 고갱의 그림들이 팔려 나가요. 남태평양으로 떠날 뱃삯을 마련하려는 경매였어요. 시인 스테판 말라르메가 이 일을 도왔어요.
한 달 뒤인 3월 23일, 카페 볼테르에서 송별 잔치가 열렸어요. 화가와 작가들이 모였고, 말라르메가 떠나는 화가를 위해 잔을 들었어요. 4월 초 프랑스를 떠난 고갱은 6월 타히티에 닿았고, 그해 성모와 아기를 타히티 사람으로 그린 「이아 오라나 마리아」를 그렸어요.
이때 그린 그림이아 오라나 마리아 - 1893타히티와 파리
1893년 여름, 고갱이 타히티를 떠나 프랑스 마르세유로 돌아와요. 짐 속에는 섬에서 그린 그림이 가득했어요. 그해 섬에서 그린 「메라히 메투아 노 테하마나 (테하마나의 조상들)」도 그중 하나예요. 미술관 설명으로는 그림 속 소녀는 열세 살의 테하마나이고, 고갱은 그녀를 자기 욕망을 담은 이국의 모습으로 바꿔 놓았어요.
그림을 보세요. 줄무늬 선교사 옷을 입은 소녀가 부채를 쥐고 정면을 봐요. 뒤 벽에는 노란 기호들이 줄지어 있고, 왼쪽 아래에는 망고가 놓였어요.
그해 11월, 파리 뒤랑뤼엘 화랑에서 타히티 그림 전시가 열렸지만 잘 팔리지 않았어요. 그래도 선배 화가 에드가 드가는 이 무렵 고갱에게서 그림 「달과 땅」을 받아 죽을 때까지 간직했어요.
이때 그린 그림메라히 메투아 노 테하마나 (테하마나의 조상들) - 1903히바오아섬 아투오나
1903년 3월, 마르키즈 제도 히바오아섬의 작은 법정이 고갱에게 판결을 내려요. 섬의 헌병을 헐뜯었다는 죄로 감옥 석 달과 벌금이었어요. 그는 섬사람들 편에 서서 관리들과 자주 다투었어요.
고갱은 타히티의 파페에테 법원에 항소하려고 돈을 모았어요. 그러나 재판이 열리기 전인 5월 8일 아침, 이웃 티오카와 함께 지은 2층 집 '기쁨의 집'에서 숨을 거두었어요. 쉰네 살이었어요. 그가 남긴 그림들은 뒤에 세계 곳곳의 미술관으로 흩어졌고, 이 사이트의 세 점은 지금 뉴욕과 시카고에 있어요.
함께한 사람들
작품
평예재에 걸린
폴 고갱의 그림
폴 고갱의 그림 속 숨은 이야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