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눈에
- 넓은 검은 모자를 쓰고 긴 곱슬머리를 늘어뜨린 젊은 화가 헤라르트 더 라이레서가 종이 묶음을 손에 들고 앉아 있어요.
- 렘브란트 판 레인이 1665~67년 무렵, 예순 살 무렵에 캔버스에 유화로 그렸어요.
- 늙은 대가가 막 도시에 온 젊은 화가를 꾸미지 않은 얼굴 그대로 그렸다는 점에서 오래 바라보게 되는 초상화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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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을 확대해 보세요. 콧등이 낮게 꺼져 있고, 콧방울 둘레가 붉게 짓물러 보여요. 라이레서는 태어날 때부터 앓은 병 때문에 얼굴, 특히 코의 모양이 달라져 있었다고 알려져 있어요. 렘브란트는 그 얼굴을 감추지 않았고, 정면을 바라보는 검은 두 눈을 또렷하게 그렸어요.
목깃과 머리카락이 만나는 곳을 보세요. 흰 레이스 깃은 물감을 두껍게 올린 뒤 끝이 뾰족한 도구로 긁어 낸 듯한 자국이 가득해요. 그 위로 황갈색 곱슬머리가 굵은 붓질로 흘러내려요. 가까이서 보면 무늬보다 물감 덩어리가 먼저 보여요.
가슴 한가운데 매달린 술 장식을 확대해 보세요. 어둠 속에서 회백색 붓 자국 몇 번이 뭉쳐 있을 뿐인데, 조금 떨어져서 보면 실을 묶은 장식처럼 보여요. 렘브란트의 말년 그림에서는 이렇게 거친 붓질이 많이 보여요.
아래쪽 손을 보세요. 한 손이 반쯤 펼친 종이 묶음을 쥐고 있고, 그 끝에 흰 종이 가장자리가 빛을 받아요. 손등에는 붓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어요. 종이 묶음은 화가가 그림이나 소묘를 넣고 다니던 화첩처럼 보여요.
이 그림이 그려진 때
1665년 무렵, 암스테르담에 지금의 벨기에 리에주에서 온 젊은 화가가 나타났어요. 스무 살 중반의 라이레서였죠. 그는 미술상 헤릿 판 아윌렌뷔르흐 밑에서 일을 시작했어요. 이 이름은 렘브란트에게 낯설지 않았어요. 서른 해쯤 전 렘브란트가 처음 암스테르담에 와서 머문 곳이 헤릿의 아버지 헨드릭의 집이었고, 그 집안의 사스키아가 렘브란트의 아내가 되었거든요.
그 무렵 렘브란트는 쉰아홉 살이었어요. 1656년 파산으로 큰 집과 수집품을 잃고, 로젠흐라흐트의 작은 집에서 지내고 있었어요. 1663년에는 함께 살던 헨드리케 스토펠스도 세상을 떠났어요.
렘브란트는 젊은 손님의 얼굴을 꾸미지 않았어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라이레서가 앓던 병을 선천성 매독으로 보고, 렘브란트가 그 흔적을 감추지 않고 그렸다고 설명해요.
라이레서는 곧 밝고 고전적인 그림으로 암스테르담에서 이름을 얻었어요. 그러다 1690년 무렵 눈이 멀어 붓을 놓았어요. 그 뒤 그가 화가들에게 들려준 그림 이야기는 1707년 두툼한 그림 책으로 나왔어요. 그 책에서 그는 렘브란트의 두꺼운 물감을 화폭 위의 진흙에 빗대어 깎아내렸어요.
렘브란트는 이 초상화를 그리고 몇 해 뒤인 1669년 세상을 떠났어요. 그림은 훗날 로버트 레만의 소장품이 되어 1975년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들어왔어요.
이제 다시 화첩을 쥔 손과 정면을 보는 두 눈을 보세요. 훗날 렘브란트의 물감을 진흙이라 부를 젊은이가, 바로 그 두꺼운 물감으로 여기 남아 있어요.
함께 생각해 볼 질문
- 찾아보기모자 챙 아래 이마 위로, 그림자가 얼굴의 어디까지 내려와 있는지 찾아볼 수 있나요?
- 왜일까렘브란트는 왜 라이레서의 코를 부드럽게 고쳐 그리지 않고 있는 그대로 그렸을까요?
- 나라면요즘은 사진 앱으로 얼굴을 쉽게 고칠 수 있어요. 내 사진을 남에게 보여 줄 때, 나는 얼마나 있는 그대로를 보여 주고 싶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