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가 · 19세기
앙리 드 툴루즈로트레크
Henri de Toulouse-Lautrec · 1864–1901
남프랑스 귀족 집안의 맏아들로 태어나, 물랭 루주의 무희와 가수와 손님들을 포스터와 그림에 옮겨 파리의 밤을 거리로 끌어낸 화가예요.
생애 장면
앙리 드 툴루즈로트레크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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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78알비
1878년, 열세 살의 앙리가 알비의 집에서 낮은 의자에서 일어나다 미끄러져 넘어져요. 왼쪽 넓적다리뼈가 부러졌어요. 이듬해 8월, 온천 마을 바레주에 머물던 그는 또 넘어져 이번에는 오른쪽 넓적다리뼈가 부러졌어요.
뼈는 제대로 붙지 않았고, 두 다리는 그 뒤 더 자라지 않았어요. 그의 부모는 사촌끼리 결혼한 사이였어요. 침대에 오래 누워 지내는 동안 그는 그림을 더 많이 그렸어요. 아버지의 친구인 말 그림 화가 르네 프랭스토가 그 무렵 그의 첫 선생님이었어요.
- 1887파리
파리의 화가 페르낭 코르몽의 화실에는 젊은 화가들이 모여 그림을 배웠어요. 툴루즈로트레크도 그중 하나였고, 1886년에는 네덜란드 사람인 서른세 살의 빈센트 반 고흐가 이 화실에 들어왔어요.
이듬해 툴루즈로트레크는 반 고흐를 파스텔로 그렸어요. 반 고흐는 카페 탁자 앞에 몸을 옆으로 돌려 앉아 있고, 그 앞에 압생트 잔 하나가 놓였어요. 이 초상은 반 고흐와 동생 테오가 간직했고, 지금 암스테르담 반 고흐 미술관에 있어요.
- 1890브뤼셀
1890년 1월, 브뤼셀의 전시 모임 레뱅(20인회)이 해마다 여는 전시의 개막 만찬 자리예요. 그해 전시에는 반 고흐의 해바라기 그림이 걸렸어요. 벨기에 화가 앙리 드 그루가 이 그림을 헐뜯었어요.
그러자 툴루즈로트레크가 드 그루에게 결투를 신청했어요. 함께 있던 화가 폴 시냐크도 반 고흐 편을 들었어요. 결투는 끝내 벌어지지 않았고, 드 그루는 그해 이 모임에서 물러나야 했어요. 반 고흐는 그해 7월 세상을 떠났어요.
- 1891몽마르트르
1891년, 물랭 루주의 주인 샤를 지들레르가 새 철을 알릴 포스터를 툴루즈로트레크에게 맡겨요. 그가 그린 서커스 여자 기수 그림은 물랭 루주 주인이 사들여 입구 홀에 걸어 두었어요.
포스터 「물랭 루주, 라 굴뤼」는 그의 첫 포스터였어요. 한가운데서 무희 라 굴뤼가 다리를 차올리고, 앞쪽에는 그림자처럼 어두운 남자의 옆모습이 서 있어요. 이 포스터로 그의 이름이 파리 사람들에게 알려졌어요.
이듬해 그는 이곳에서 친구인 영국 화가 윌리엄 톰 워러너를 그렸어요. 실크해트를 쓴 워러너가 두 여자에게 다가선 장면이에요. 그는 같은 해 이 장면을 색 석판화로도 찍었어요.
이때 그린 그림물랭 루주의 영국인 - 1892 무렵물랭 루주
물랭 루주에는 툴루즈로트레크의 자리가 늘 따로 잡혀 있었어요. 그는 그곳의 단골과 무희, 친구들을 한 화면에 모았어요. 그림 「물랭 루주에서」예요.
가운데 뒤쪽을 보세요. 키가 아주 큰 실크해트 신사 곁에 작은 사람이 서 있어요. 큰 사람은 의사였던 사촌 가브리엘 타피에 드 셀레랑이고, 작은 사람이 화가 자신이에요. 오른쪽 끝에는 메이 밀턴의 얼굴이 불빛을 받아 시퍼런 초록으로 떠 있어요.
이 그림은 한때 둘로 잘렸어요. 화가나 화상이 메이 밀턴이 있는 오른쪽 부분을 잘라 냈고, 1914년에는 그 부분이 다시 붙어 있었어요.
이때 그린 그림물랭 루주에서 - 1899뇌이
1899년 2월 말, 술 때문에 쓰러진 툴루즈로트레크를 어머니 아델이 파리 근처 뇌이의 정신병원에 들여보내요. 병원에서 그는 몽마르트르의 페르낭도 서커스를 떠올리며 색연필과 파스텔로 그림을 그렸어요.
말과 기수, 곡예사와 광대가 한 장씩 늘어 서른아홉 장이 되었어요. 기억이 흐려지는 것이 병의 증상이라고 여겨지던 때라, 기억만으로 그린 이 그림들은 그가 나았다는 증거가 되었어요. 그는 5월 17일에 병원을 나왔어요.
이때 그린 그림서커스에서: 스페인 걸음 - 1901말로메
1901년 9월 9일, 툴루즈로트레크가 보르도 근처 어머니의 영지 말로메 성에서 세상을 떠나요. 서른여섯 살이었어요.
그 뒤 어머니 아델은 아들의 친구이자 화상인 모리스 주아양, 사촌 가브리엘과 함께 아들의 그림을 고향 알비에 기증했어요. 1922년 7월 기증 문서에 서명했고, 같은 해 옛 주교관 베르비궁에 툴루즈로트레크 미술관이 문을 열었어요. 이 사이트의 세 그림은 다른 길을 걸어, 지금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과 시카고 미술관에 걸려 있어요.
함께한 사람들
- 아델 드 툴루즈로트레크어머니로, 1899년 아들을 병원에 맡겼고 그가 죽은 뒤 그림을 알비에 기증했어요.
- 르네 프랭스토아버지의 친구인 말 그림 화가로, 소년 시절 그의 첫 선생님이었어요.
- 빈센트 반 고흐코르몽 화실에서 만난 동료로, 툴루즈로트레크가 1887년 파스텔 초상을 그렸어요.
- 가브리엘 타피에 드 셀레랑의사였던 사촌으로, 「물랭 루주에서」에 함께 그려졌어요.
- 모리스 주아양친구이자 화상으로, 그가 죽은 뒤 그림을 지키고 알비 미술관 기증을 도왔어요.
- 윌리엄 톰 워러너영국 화가 친구로, 「물랭 루주의 영국인」의 모델이에요.
작품
평예재에 걸린
앙리 드 툴루즈로트레크의 그림
앙리 드 툴루즈로트레크의 그림 속 숨은 이야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