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눈에
- 머리에 흰 수건을 두르고 검은 모자를 쓴 남자가 초록 벤치에 걸터앉아 기타를 치며 노래하는 모습이에요.
- 에두아르 마네가 1860년에 그린 유화로, 높이가 1.5미터 가까이 되는 큰 그림이에요.
- 마네가 파리의 공식 전시회 살롱에 처음으로 걸린 그림 가운데 하나라서, 젊은 화가의 출발점을 볼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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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부터 확대해 보세요. 눈썹이 올라가고 입이 동그랗게 열려 있어요. 지금 막 한 소절을 뽑는 순간이에요. 얼굴 한쪽에는 그늘이 지고, 흰 수건 끝자락이 모자 밑으로 삐져나와 귀 옆에서 구겨져 있어요.
이제 기타를 잡은 두 손을 보세요. 줄을 누르는 손은 그림 왼쪽, 곧 남자의 오른손이에요. 줄을 튕기는 손은 왼손이고요. 오른손잡이와 반대로 쥔 자세예요. 손가락 마디는 몇 번의 굵은 붓질로만 그려져 있는데, 조금 떨어져서 보면 단단한 손이 돼요.
벤치의 앞면을 확대해 보세요. 붉은 글씨로 ed. Manet 와 해 숫자가 적혀 있어요. 화가는 서명을 그림 구석의 빈 바탕이 아니라, 그림 속 물건 위에 슬쩍 써넣었어요. 벤치가 화가의 이름표가 된 셈이에요.
오른쪽 아래 바닥으로 내려가 보세요. 갈색 흙 항아리 앞에 양파 두 개와 마늘 한 쪽이 놓여 있어요. 양파의 연분홍과 연두가 어두운 바닥에서 반짝여요. 노래하는 사람 옆에 차려진 작은 정물화예요.
이 그림이 그려진 때
1860년, 스물여덟 살 마네는 아직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화가였어요. 법무부의 높은 관리였던 아버지는 아들이 법을 공부하기를 바랐지만, 마네는 화가 토마 쿠튀르의 화실에서 여섯 해 동안 그림을 배웠어요. 그런데 홀로 서려던 첫걸음에서 넘어졌어요. 1859년 살롱에 낸 「압생트 마시는 사람」이 심사에서 떨어진 거예요.
이 그림은 그 뒤 다시 살롱의 문을 두드린 그림이에요. 그 무렵 파리에서는 스페인 풍의 옷과 음악이 유행했고, 마네는 스페인의 옛 화가 벨라스케스와 고야를 무척 따랐어요. 그런데 마네는 이때 스페인에 가 본 적이 없었어요. 스페인 땅은 1865년에야 처음 밟았으니, 이 가수는 파리의 화실에서 옷을 갖춰 입고 앉은 모델이에요.
1861년 살롱에는 마네의 그림 두 점이 함께 걸렸어요. 하나는 이 그림이고, 다른 하나는 부모님을 나란히 그린 초상화였어요. 이 그림은 가작 상을 받았어요. 시인이자 비평가 테오필 고티에도 신문에 이 그림을 칭찬하는 글을 실으며, 그 안에서 벨라스케스와 고야의 기운을 읽어 냈어요.
더 뜨겁게 반응한 건 젊은 화가들이었어요. 작가 페르낭 데누아예가 1863년에 남긴 글에 따르면, 이 그림에 끌린 젊은 화가들이 무리 지어 마네의 화실을 찾아갔어요. 그 가운데에는 팡탱라투르와 르그로도 있었어요. 마네 둘레에 새 화가들이 모이기 시작한 거예요.
그림은 그 뒤 바다를 건넜어요. 1907년 파리의 화상 뒤랑뤼엘이 뉴욕의 윌리엄 처치 오즈번에게 이 그림을 팔았고, 오즈번은 1949년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그림을 기증했어요.
이제 가수의 하얀 신발을 다시 보세요. 흰 물감 몇 번을 굵고 빠르게 쓸어 놓았을 뿐인데, 신발이 어두운 바닥 위로 툭 튀어나와요. 한 번 떨어진 젊은 화가가 다시 내민 붓질이 바로 거기 남아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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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생각해 볼 질문
- 찾아보기바닥에서 양파와 마늘 말고 떨어져 있는 작은 물건을 하나 더 찾을 수 있나요?
- 왜일까마네는 왜 서명을 그림 구석이 아니라 가수가 앉은 벤치 위에 써넣었을까요?
- 나라면가 보지 않은 나라를 상상해 그린 그림이 칭찬을 받았어요. 오늘 우리가 다른 나라 문화를 옷이나 노래로 따라 할 때, 어디까지가 즐거운 동경이고 어디부터 고정관념일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