Édouard Manet, Bust-Length Portrait에 그려진 얼굴

화가 · 19세기

에두아르 마네

Edouard Manet · 1832–1883

비웃음과 낙선을 거듭 받으면서도 끝까지 공식 전시회 살롱의 문을 두드리며, 자기 시대 파리 사람들을 크고 대담한 붓질로 그린 화가예요.

51살았던 해
19주로 그린 세기

생애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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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두아르 마네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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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849리우데자네이루

    열일곱 살 에두아르가 배 위에서 낯선 항구를 바라봐요. 해군 학교 입학시험에 떨어진 그는 1848년 12월 르아브르에서 견습 선원으로 배를 탔고, 이듬해 2월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 닿았어요. 바다에서 경력을 쌓아 다시 시험을 보려는 계획이었어요.

    파리로 돌아온 1849년 여름, 그는 해군 학교 시험에 또 떨어졌어요. 법무부의 높은 관리였던 아버지는 결국 아들이 그림을 배우도록 허락했어요. 1850년 무렵 마네는 학교 친구 앙토냉 프루스트와 함께 화가 토마 쿠튀르의 화실에 들어갔어요.

  2. 1861파리

    살롱 심사 결과가 나와요. 두 해 전 「압생트 마시는 사람」으로 떨어졌던 마네의 그림 두 점이 이번에는 나란히 걸렸어요. 부모님을 그린 초상화, 그리고 「스페인 가수」예요. 「스페인 가수」는 가작 상을 받았고, 시인 테오필 고티에가 신문에 칭찬을 실었어요.

    가수의 손을 보세요. 줄을 누르는 손이 오른손, 줄을 튕기는 손이 왼손이에요. 오른손잡이와 반대로 쥔 모습이에요. 마네는 이때까지 스페인 땅을 밟아 본 적이 없었어요.

    이때 그린 그림스페인 가수
  3. 1863파리

    그해 살롱 심사에서 떨어진 그림이 너무 많아 불만이 터지자, 나폴레옹 3세가 떨어진 그림들만 따로 보여 주는 전시를 열게 해요. 사람들은 이 전시를 낙선전이라고 불렀어요. 마네는 이곳에 「풀밭 위의 점심」을 걸었어요. 옷을 차려입은 남자 둘 곁에 벗은 여인이 앉은 그림 앞에서 관람객들은 비웃고 화를 냈어요.

    같은 해 10월, 마네는 네덜란드의 작은 도시 잘트보멀에서 쉬잔 렌호프와 결혼했어요. 쉬잔은 피아니스트였고, 오래전부터 마네 형제에게 피아노를 가르친 사람이었어요.

  4. 1865마드리드

    살롱에 건 「올랭피아」가 또 한 번 큰 소동을 일으킨 해예요. 그해 늦여름 마네는 처음으로 스페인에 가요. 마드리드의 프라도 미술관에서 그는 오래 좋아해 온 벨라스케스의 그림을 처음 눈앞에서 봤어요.

    마네는 마드리드에서 친구인 화가 팡탱라투르에게 편지를 보냈어요. 벨라스케스 하나만으로도 이 여행은 할 만했다고 쓰고, 그를 화가 중의 화가라고 불렀어요. 마네는 스페인에 오래 머물지 않고 곧 파리로 돌아왔어요.

  5. 1867파리

    파리 만국 박람회가 열려요. 미술 전시에 자기 그림이 제대로 들어가지 못하자, 마네는 박람회장 가까운 알마 광장에 자기 돈으로 전시장을 따로 짓고 그림 쉰여 점을 걸었어요. 같은 해 쿠르베도 따로 전시장을 세웠어요.

    그 한 해 전 젊은 작가 에밀 졸라가 신문에 마네를 옹호하는 글을 실었어요. 마네는 1866년, 분홍 실내복을 입은 여인이 제비꽃을 턱 가까이 들고 선 큰 그림을 그렸어요. 옆 횃대에는 잿빛 앵무새가 고개를 숙이고 있어요. 모델은 「올랭피아」의 빅토린 뫼랑이에요.

    이때 그린 그림1866년의 젊은 여인
  6. 1870생제르맹앙레

    1870년 2월, 마네가 카페에서 비평가 루이 에드몽 뒤랑티의 뺨을 때려요. 자기 그림에 대한 뒤랑티의 미지근한 글에 화가 난 거예요. 사흘 뒤 두 사람은 파리 밖 생제르맹앙레 숲에서 칼을 들고 마주 섰어요.

    마네 쪽 입회인 가운데 한 사람은 졸라였어요. 졸라와 입회인들이 서명한 결투 기록에 따르면 두 칼이 한 번 세게 부딪쳐 둘 다 휘어졌고, 뒤랑티가 가슴에 가벼운 상처를 입었어요. 결투는 그걸로 끝났어요. 두 사람은 곧 화해했고, 우정은 뒤랑티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이어졌어요.

  7. 1874젠빌리에

    그해 봄 모네와 친구들이 훗날 첫 인상주의 전시회라 불리는 전시를 열어요. 친구들은 마네도 함께하길 바랐지만, 마네는 끝내 그 전시에 그림을 내지 않고 살롱에 그림을 냈어요. 그해 살롱에는 기찻길 철책 앞에 선 여인과 아이를 그린 그림이 걸렸어요.

    여름에는 센강 가 젠빌리에의 가족 집에 머물며, 강 건너 아르장퇴유의 모네와 자주 어울렸어요. 모네 가족을 그리던 날에는 마침 찾아온 르누아르가 곁에서 같은 장면을 그렸어요. 「뱃놀이」도 이 여름의 그림이에요. 하늘 없이 청록빛 물만 가득한 배경 앞에서 밀짚모자의 남자가 키를 잡고 우리를 봐요.

    이때 그린 그림뱃놀이
  8. 1883파리

    1881년 말, 오랜 친구 앙토냉 프루스트가 미술 장관이 된 뒤 마네는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았어요. 하지만 몸은 이미 많이 상해 있었어요. 1882년 살롱에 「폴리베르제르의 술집」을 낸 것이 그의 마지막 큰 그림이 되었어요.

    1883년 4월 20일, 썩어 들어가던 왼쪽 다리를 잘라 내는 수술을 받았어요. 열흘 뒤인 4월 30일, 마네는 쉰한 살로 세상을 떠났어요. 5월 3일 파시 묘지에서 장례가 열렸고, 모네가 관을 드는 여섯 사람 가운데 하나로 불려 왔어요.

남긴 말

C'est le peintre des peintres.

그는 화가 중의 화가예요. (1865년 마드리드에서 벨라스케스의 그림을 보고 팡탱라투르에게 보낸 편지)

함께한 사람들

  • 쉬잔 렌호프1863년에 결혼한 아내로, 네덜란드 출신 피아니스트예요.
  • 앙토냉 프루스트학교 친구로, 쿠튀르 화실에 함께 들어갔고 훗날 미술 장관이 되었어요.
  • 에밀 졸라마네를 신문에서 옹호한 작가로, 결투 때 마네의 입회인이었어요.
  • 빅토린 뫼랑「풀밭 위의 점심」과 「올랭피아」, 「1866년의 젊은 여인」의 모델이에요.
  • 클로드 모네1874년 여름을 함께 보낸 화가 친구로, 마네의 관을 들었어요.
  • 베르트 모리조마네의 그림에 여러 번 모델로 선 화가로, 1874년 마네의 동생 외젠과 결혼했어요.

작품

평예재에 걸린
에두아르 마네의 그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