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눈에
- 파리 센강의 섬 그랑드자트 공원에서 일요일 오후를 보내는 사람들을 그렸어요.
- 조르주 쇠라가 1884년부터 1886년까지 그렸고, 1888~89년에 테두리를 덧그렸어요.
- 가로 3미터가 넘는 화면 전체가 붓 끝으로 찍은 작은 색 점으로 되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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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 아래, 양산을 든 여인의 발치를 보세요. 줄에 묶인 작은 원숭이가 등을 둥글게 말고 있어요. 그 앞으로는 꼬리를 말아 올린 작은 개가 뛰어가요. 쇠라는 처음 그리기 시작하고 2년쯤 지나 그림으로 돌아와 몇몇 사람을 더 넣었는데, 이 원숭이도 그때 더해진 것이에요.
왼쪽 물가에 선 여인을 확대해 보세요. 긴 낚싯대를 강 쪽으로 내밀고 있어요. 그 뒤의 물빛은 파랑, 초록, 주황 점이 짧은 가로 획으로 겹쳐 반짝여요. 차려입은 옷차림 그대로 낚시를 하는 모습이에요.
가운데 하얀 옷을 입은 여자아이를 보세요. 다른 사람들은 대부분 옆모습인데, 이 아이는 앞을 향해 서 있어요. 그런데 얼굴은 눈코입 없이 흐릿한 색 덩어리예요. 쇠라는 사람들의 표정 대신 자세와 윤곽을 또렷하게 세웠어요.
그림 오른쪽 끝을 확대해 보세요. 풀밭이 끝나는 곳에 파랑과 빨강 점이 촘촘한 띠가 세로로 지나가요. 쇠라가 그림을 처음 내놓고 몇 년 뒤인 1888~89년에 덧그린 테두리예요.
그늘진 풀밭을 아주 가까이 확대해 보세요. 초록 하나로 칠한 곳이 없어요. 파랑, 노랑, 분홍, 연두 점이 섞여 있어요. 쇠라는 색을 팔레트에서 섞지 않고 나란히 찍어 두면, 멀리서 볼 때 눈 속에서 더 밝은 색으로 어우러진다고 믿었어요.
이 그림이 그려진 때
1884년 봄, 스물네 살의 쇠라는 첫 큰 그림 「아니에르의 물놀이」를 살롱에 냈다가 떨어졌어요. 그는 그해 새로 생긴 독립 미술가 전시에 그 그림을 걸었고, 거기서 화가 폴 시냐크를 만났어요. 두 사람은 그 뒤 점으로 그리는 새 방식을 함께 밀고 나가요.
「아니에르의 물놀이」에서 강 건너편으로 보이는 섬이 바로 그랑드자트예요. 쇠라는 이번에는 강을 건너 그 섬으로 갔어요. 그리고 이 큰 화면에 앞서 작은 유화 밑그림과 소묘를 아주 많이 그렸고, 더 큰 캔버스로도 몇 번이나 풍경과 사람의 자리를 미리 짜 보았어요.
1886년 5월, 마지막 인상파 전시에 이 그림이 걸렸어요. 쇠라와 시냐크를 이 전시에 끌어들인 사람은 카미유 피사로였고, 모네와 르누아르는 이 전시에 그림을 내지 않았어요. 그해 비평가 펠릭스 페네옹은 이 젊은 화가들의 방식을 신인상주의라고 불렀어요.
쇠라는 사생활을 거의 드러내지 않았어요. 모델 마들렌 크노블로크와 함께 살며 1890년 아들을 얻었지만, 가족은 그가 세상을 떠나기 며칠 전에야 이 사실을 알았어요. 1891년 3월, 쇠라는 갑자기 병으로 세상을 떠났어요. 서른한 살이었어요.
그림은 1924년 시카고의 수집가 프레더릭 클레이 바틀릿이 사들이며 시카고 미술관에 왔어요. 그는 세상을 떠난 아내 헬렌 버치 바틀릿을 기리는 컬렉션으로 이 그림을 미술관에 남겼어요. 1986년 영화 「페리스의 해방」에는 주인공의 친구 캐머런이 이 그림 앞에 서서 한참을 들여다보는 장면이 나와요.
이제 왼쪽 아래, 모자를 쓰고 소매 없는 옷을 입은 채 긴 파이프를 문 남자를 보세요. 바로 옆에는 실크해트를 쓴 신사가 앉아 있어요. 쇠라는 이 섬의 일요일에 나이도 처지도 다른 사람들을 한 화면에 모아 두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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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생각해 볼 질문
- 찾아보기그림 속에서 양산은 몇 개, 강 위의 배는 몇 척이나 보이나요?
- 왜일까쇠라는 왜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인 공원에서 서로 이야기하는 사람을 거의 그리지 않았을까요?
- 나라면같은 공원에 있어도 저마다 따로 있는 이 사람들처럼, 오늘 우리는 함께 있으면서도 각자 화면만 보고 있지는 않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