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눈에
- 화실 벽 앞에 옷을 벗은 모델 한 사람이 두 팔을 내리고 정면을 보며 똑바로 서 있어요.
- 조르주 쇠라가 1886~87년에 콩테 크레용으로 그린 습작이에요.
- 윤곽선이 하나도 없는데도, 어둠과 밝음의 차이만으로 사람의 몸이 종이에서 떠올라요.
그림 읽기
가까이 다가가 볼 4곳
그림 위 번호를 누르면 그 해설로, 확대 그림을 누르면 그림 전체에서 그 자리로 가요.
얼굴을 확대해 보세요. 눈, 코, 입을 그은 선이 없어요. 눈두덩과 머리카락에만 검은 가루를 짙게 얹고, 이마와 뺨은 종이 색을 남겨 두었어요. 멀리서 보면 우리를 조용히 마주 보는 얼굴이 돼요.
그림 오른쪽에 보이는 팔을 보세요. 팔은 밝은 띠로 떠 있고, 그 양옆에 어두운 그늘이 깔려 있어요. 쇠라는 몸과 벽 사이에 선을 긋는 대신, 밝은 것 옆에 어두운 것을 놓아 모양을 만들었어요.
아무것도 없는 왼쪽 벽을 아주 가까이 보세요. 회색으로 보이던 곳이 사실은 검은 알갱이와 종이 색 알갱이로 나뉘어 있어요. 오돌토돌한 종이 표면의 튀어나온 곳에만 크레용이 묻었기 때문이에요. 쇠라가 유화에서 찍은 작은 색점과 닮았어요.
오른쪽 아래 구석의 어두운 덩어리를 보세요. 크레용을 세로로 촘촘히 그어 네모난 물건을 만들었어요. 그 왼쪽으로 바닥과 벽이 만나는 검은 띠가 화면을 가로질러요. 텅 빈 방에 이 두 가지만으로 깊이가 생겨요.
이 그림이 그려진 때
1886년 5월, 파리. 스물여섯 살의 조르주 쇠라는 가로 3미터가 넘는 그림 「그랑드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를 여덟 번째이자 마지막 인상주의 전시회에 걸었어요. 작은 색점을 나란히 찍어 채운 화면 앞에서 사람들의 반응은 크게 갈렸어요. 그해 비평가 펠릭스 페네옹은 쇠라와 그 방식을 따르는 화가들을 신인상주의자라고 불렀어요.
칭찬만 들은 건 아니었어요. 점으로 찍은 사람들이 뻣뻣하게 굳어 보인다는 비판도 나왔어요. 쇠라는 다음 큰 그림을 자기 화실 안으로 옮겨 왔어요. 옷을 벗은 모델 세 사람을 앞모습, 뒷모습, 옆모습으로 담고, 왼쪽 벽에는 「그랑드 자트」 한 귀퉁이를 걸어 둔 「모델들」이에요.
이 그림을 그 비판에 대한 쇠라의 대답으로 보는 학자가 많아요. 점으로도 사람의 몸을 충분히 그릴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려 했다는 해석이에요. 이 소묘는 그 그림 가운데에 서서 우리를 똑바로 보는 모델을 준비한 습작이에요. 쇠라는 세 모델마다 작은 나무판에 유화 습작도 그렸는데, 그 세 점은 지금 파리 오르세 미술관에 있어요.
「모델들」은 1888년 봄 앵데팡당 전시회에 걸렸어요. 쇠라는 그 뒤에도 「서커스 선전 공연」, 「샤위」 같은 큰 그림을 이어 갔어요. 그러다 1891년 3월, 서른한 살에 갑자기 세상을 떠났어요. 「모델들」은 지금 필라델피아 반스 재단에 있고, 이 소묘는 1975년 로버트 레먼 컬렉션과 함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들어왔어요.
다시 이 모델을 보세요. 완성된 그림에서는 벗어 둔 옷과 모자, 다른 두 모델이 그 곁을 채워요. 여기서는 두 손을 앞에 모은 채 빈 벽 앞에 혼자 서 있어요.
같은 화가의 다른 그림
함께 생각해 볼 질문
- 찾아보기그림 어디에도 윤곽선이 없는데, 모델의 다리와 벽이 어디서 갈리는지 찾을 수 있나요?
- 왜일까쇠라는 왜 모델에게 멋진 자세 대신 차렷 자세처럼 똑바로 서 있게 했을까요?
- 나라면화가의 모델은 보통 돈을 받고 오랜 시간 같은 자세로 서 있는 일을 했어요. 작품에는 화가 이름만 남는데, 그 작품을 함께 만든 사람들을 우리는 어떻게 기억하면 좋을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