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가 · 19세기
귀스타브 카유보트
Gustave Caillebotte · 1848–1894
비 오는 파리의 새 거리와 센강의 요트, 자기 정원의 꽃을 그리면서, 물려받은 재산으로 가난한 인상파 친구들의 전시를 꾸리고 그들의 그림을 사 모은 파리의 화가예요.
생애 장면
귀스타브 카유보트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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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70파리
1870년 7월, 프랑스와 프로이센 사이에 전쟁이 터져요. 막 변호사 자격을 딴 귀스타브 카유보트는 센 지역 국민 기동대에 들어가 군복을 입었어요. 그는 이듬해 3월까지 군대에 있었어요.
아버지 마르시알은 군대에 천과 침구를 대는 집안 사업을 물려받아 큰돈을 모은 사람이었어요. 상사 재판소의 판사이기도 했고요. 그런데 전쟁에서 돌아온 아들은 법률 사무소가 아니라 화가 레옹 보나의 화실로 찾아갔어요.
- 1875파리
살롱 심사위원들 앞에 큰 그림 한 점이 놓여요. 웃통을 벗은 남자 셋이 무릎을 꿇고 마룻바닥을 긁어내는 그림, 「마루를 깎는 사람들」이에요. 심사위원들은 이 그림을 떨어뜨렸어요.
카유보트는 그 뒤로 다시는 살롱에 그림을 내지 않았어요. 바로 전해 겨울에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 그는 큰 재산을 물려받은 참이었어요. 이듬해 봄 인상파 화가들이 그를 불렀고, 그는 이 그림을 그들의 두 번째 전시에 걸었어요.
- 1876파리
1876년 11월 1일, 동생 르네가 스물다섯 살로 세상을 떠나요. 이틀 뒤인 11월 3일, 스물여덟 살의 카유보트는 유언장을 썼어요.
유언장에는 두 가지 부탁이 있었어요. 하나는 자기 재산에서 돈을 떼어 1878년에 인상파라 불리는 화가들의 전시를 가장 좋은 조건으로 열어 달라는 것이었어요. 다른 하나는 자기가 모은 그림을 나라에 남기되, 그 그림들이 뤽상부르 미술관을 거쳐 루브르에 걸려야 한다는 것이었어요. 그는 그 뒤로도 친구들의 그림을 계속 사들였어요.
- 1877파리
1877년 4월, 르 펠르티에 거리 6번지의 빈 건물에 그림이 걸려요. 세 번째 인상파 전시예요. 카유보트가 방을 빌리고 집세와 광고비를 댔어요. 화가들과 의논해 전시를 꾸리는 일도 그가 거의 도맡았어요.
그가 내건 그림 가운데 「파리의 거리, 비 오는 날」이 있었어요. 가로 2.7미터가 넘는 캔버스예요. 회색 우산들이 모두 비슷한 각도로 기울었고, 가운데 초록 가로등이 화면을 둘로 갈라요. 왼쪽 멀리, 마차 바퀴의 붉은 살이 젖은 돌길 위에서 눈에 띄어요.
이때 그린 그림파리의 거리, 비 오는 날 - 1881파리
카유보트가 피사로에게 긴 편지를 써요. 드가에 대한 불만이 가득한 편지예요. 다툼의 한가운데에는 드가가 전시에 넣자고 고집한 화가 라파엘리가 있었어요. 결국 그해 여섯 번째 인상파 전시에 카유보트는 그림을 내지 않았어요.
피사로는 형편이 어려울 때 드가가 자기를 도와준 일을 잊지 않고 있었어요. 이듬해 일곱 번째 전시에서 카유보트는 라파엘리를 빼는 것을 조건으로 내걸었고, 이번에는 드가가 빠졌어요.
- 1881프티젠빌리에
같은 해, 카유보트와 막냇동생 마르시알이 센강가 마을 프티젠빌리에에 집을 사요. 강 건너편은 요트 경주가 열리던 아르장퇴유였어요. 카유보트는 한 해 전에 파리 요트 클럽의 부회장이 되었어요.
그는 배를 직접 설계했어요. 「로스트비프」라는 이름의 배도 그가 설계한 배예요. 그가 설계한 배들은 센강과 노르망디 트루빌의 경주에서 여러 번 이겼어요. 1880년대 말, 그는 파리의 집을 정리하고 이 강가 집에 아예 눌러앉았어요. 곁에는 동반자 샤를로트 베르티에가 있었어요.
- 1893프티젠빌리에
정원 가꾸기에 빠진 카유보트는 친구 모네와 편지를 주고받았어요. 두 사람의 편지에는 어떤 꽃이 피었는지, 어떻게 기르는지를 묻는 이야기가 가득했어요. 카유보트는 유리 온실을 지어 난초를 길렀어요.
1893년, 그는 정원의 국화 덤불에 바짝 다가가 「프티젠빌리에 정원의 국화」를 그렸어요. 위쪽에는 하얀 국화와 검붉은 국화가 빽빽하게 피었어요. 아래쪽 3분의 1은 어두운 초록 잎과 줄기뿐이에요. 하늘도 땅도 보이지 않아요.
이때 그린 그림프티젠빌리에 정원의 국화 - 1894프티젠빌리에
1894년 2월 21일, 카유보트가 프티젠빌리에에서 마흔다섯 살로 갑자기 세상을 떠나요. 그해 동생 마르시알은 형을 기리며 흰 국화와 노란 국화를 그린 형의 그림 한 점을 모네에게 주었어요. 그 그림은 지금 파리 마르모탕 모네 미술관에 있어요.
유언 집행은 르누아르가 맡았어요. 나라는 인상파 그림 예순 점 남짓을 다 받으려 하지 않았고, 오랜 협상 끝에 마흔 점 정도만 골라 받았어요. 1897년 뤽상부르 미술관에 그 그림들의 방이 열렸어요. 그의 비 오는 거리는 1964년 시카고 미술관에, 국화 그림은 2014년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들어왔어요.
함께한 사람들
- 마르시알 카유보트막냇동생으로, 프티젠빌리에 집을 함께 샀고 형이 죽은 뒤 형의 그림을 모네에게 주었어요.
- 피에르오귀스트 르누아르인상파 동료로, 카유보트가 유언 집행을 맡긴 친구예요.
- 클로드 모네정원과 꽃 이야기를 편지로 주고받은 친구예요.
- 카미유 피사로1881년 드가와 다툴 때 카유보트가 긴 편지를 보낸 동료예요.
- 에드가르 드가인상파 전시를 두고 카유보트와 크게 다툰 동료예요.
- 샤를로트 베르티에프티젠빌리에에서 마지막까지 함께 산 동반자예요.
작품
평예재에 걸린
귀스타브 카유보트의 그림
귀스타브 카유보트의 그림 속 숨은 이야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