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가 · 19세기
윈즐로 호머
Winslow Homer · 1836–1910
전쟁터를 따라다니던 잡지 삽화가에서 출발해, 메인주 바닷가 바위 위 작업실에서 바다와 맞서 일하는 사람들을 그린 미국 화가예요.
생애 장면
윈즐로 호머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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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57보스턴
스물한 살 청년이 석판 인쇄소 문을 나서요. 1836년 보스턴에서 태어난 윈즐로는 열아홉 살에 아버지의 주선으로 존 버퍼드의 석판 인쇄소에 견습생으로 들어갔어요. 악보 표지 같은 주문 그림을 날마다 그리는 일이었어요. 철물 장사를 하던 아버지는 몇 해 전 캘리포니아 금광으로 떠났다가 빈손으로 돌아온 사람이었어요.
견습이 끝나자 그는 어느 회사에도 매이지 않고 그림을 파는 삽화가가 되었어요. 잡지 하퍼스 위클리가 정식 직원 자리를 내밀었지만 그는 거절했어요. 훗날 그는 버퍼드에서 보낸 날을 노예살이에 빗대며, 다시는 누구에게도 묶이고 싶지 않았다고 털어놓았어요.
- 1862요크타운
1862년 4월, 버지니아 요크타운 앞 복숭아 과수원이에요. 하퍼스 위클리에 그림을 보내던 호머는 북군 포토맥군을 따라 전선에 와 있었어요. 그는 저격병의 망원 조준경 소총을 한 번 들여다보았어요. 그 장면은 그해 11월 잡지에 판화로 실렸어요.
서른 해 넘게 지난 1896년, 그는 친구 조지 브릭스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날을 떠올렸어요. 조준경 속 장면이 군대에서 본 어떤 것보다 살인에 가깝게 느껴졌고, 저격병이라는 병과가 늘 끔찍했다고 적었어요. 앞서 1861년 3월에는 링컨의 대통령 취임식 장면을 그려 같은 잡지 두 쪽에 걸쳐 싣기도 했어요.
- 1866뉴욕
뉴욕 국립 디자인 아카데미 전시장에 사람들이 모여요. 호머의 「전선에서 온 포로들」 앞이에요. 북군 장교 앞에 붙잡힌 남군 병사 셋이 서 있는 그림이에요. 이 그림이 큰 관심을 끌면서 서른 살 호머는 화가로 이름을 알렸어요.
같은 무렵 그는 영국에서 막 건너와 유행하던 크로케 놀이를 다섯 점 그렸어요. 「크로케 놀이」를 보세요. 파란 드레스의 여인이 한 손을 모자에 올려 햇빛을 가려요. 밀짚모자를 쓴 남자는 쪼그려 앉아 빨간 드레스 여인의 공을 놓아 줘요. 오른쪽 아래 구석에는 그의 서명이 보여요.
이때 그린 그림크로케 놀이 - 1867파리
1866년 말, 호머는 배를 타고 파리로 건너가요. 이듬해 열린 파리 만국 박람회 미국관에 그의 그림 두 점, 「전선에서 온 포로들」과 「밝은 쪽」이 뽑혀 걸렸어요. 그는 열 달 남짓 파리와 프랑스 시골에 머물다 돌아왔어요.
돌아온 이듬해 1868년 7월 11일, 하퍼스 위클리에 그가 그린 「7월 4일 밤의 불꽃놀이」가 실려요. 하늘을 올려다보는 얼굴들이 화면을 가득 메웠어요. 오른쪽을 보세요. 떨어진 불꽃 막대가 한 신사의 높은 모자에 푹 꽂혔어요. 아래쪽 한가운데에는 코안경을 걸친 대머리 신사가 있어요.
이때 그린 그림7월 4일 밤의 불꽃놀이 - 1881컬러코츠
1881년 10월, 거센 폭풍이 북해에서 밀려와요. 영국 북동쪽 어촌 컬러코츠에 머물던 호머는 이웃 타인머스 앞바다에 배 한 척이 얹혔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화물선 아이언 크라운호였어요. 그는 바닷가에서 구조 장면을 지켜보고 수채화로 그렸어요.
그는 이 마을에서 1882년 11월까지 지냈어요. 그물을 손질하고 바다를 지켜보며 남자들을 기다리는 어부의 아내와 딸들을 수채화로 여러 점 그렸어요. 이 시간이 지난 뒤 그의 그림은 거의 모두 바다와 맞서는 사람으로 향했어요.
- 1884프라우츠넥
1884년, 메인주 프라우츠넥 앞바다에 유난히 큰 청어 떼가 몰려와요. 한 해 전 이 바닷가로 작업실을 옮긴 호머는 마을 소년 하나에게 삯을 주고 자기 작은 배의 노를 젓게 했어요. 그리고 고기잡이배들 사이로 나가 그물 올리는 모습을 그 자리에서 스케치했어요.
그 스케치로 이듬해 「청어 그물」을 완성했어요. 작은 배 위에서 한 사람은 반짝이는 청어가 걸린 그물을 끌어 올리고, 다른 한 사람은 배 안으로 고기를 옮겨요. 멀리 왼쪽과 오른쪽 안개 속에 큰 범선의 그림자가 보여요. 배 앞 파도 사이에는 붉은 부표가 떠 있어요.
이때 그린 그림청어 그물 - 1908프라우츠넥
1906년,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 그의 바다 그림 「멕시코 만류」를 사들였어요. 그 두 해 뒤인 1908년, 호머는 뇌졸중으로 쓰러졌어요. 그래도 몸을 추스르고 다시 붓을 들었어요.
그는 바닷가 바위 위, 마차 창고를 고쳐 만든 작업실에서 지냈어요. 1910년 9월, 호머는 그 작업실에서 일흔넷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어요. 그가 1885년에 그린 「청어 그물」은 오늘 시카고 미술관이 간직하고 있어요.
함께한 사람들
- 헨리에타 벤슨 호머꽃과 새를 수채화로 즐겨 그린 어머니로, 아들의 첫 그림 선생으로 꼽혀요.
- 찰스 새비지 호머철물 장사를 하다 1849년 캘리포니아 금광으로 떠났던 아버지예요.
- 찰스 새비지 호머 2세가까이 편지를 주고받은 형으로, 동생의 그림을 여러 점 간직했어요.
- 존 버퍼드호머가 열아홉 살부터 견습생으로 일한 보스턴 석판 인쇄소의 주인이에요.
- 조지 브릭스1896년 호머가 요크타운의 저격병을 떠올리는 편지를 보낸 친구예요.
작품










